최근 AI 기술이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면서, 이제는 사망한 가족이나 지인과 ‘대화’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능해졌다는 이야기가 들려옵니다. 생전의 문자, 음성, SNS 기록 등을 바탕으로 고인의 말투와 성격을 모방한 챗봇이 등장하고 있는 겁니다. 이 챗봇은 단순한 지식 기반의 응답을 넘어, 감정 표현, 대화 스타일, 심지어 농담하는 방식까지 고인의 모습을 재현하려 합니다.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, 저도 혼란스러웠습니다. 기술이 정말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감탄과 동시에, 이것이 과연 괜찮은 방향인지에 대한 질문이 떠올랐습니다.
기술일까, 추모일까
AI 챗봇은 분명히 기술입니다. 그러나 그 목적이 고인을 ‘기억’하는 데 있다면, 그것은 일종의 ‘추모의 도구’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습니다. 실제로 몇몇 스타트업은 고인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맞춤형 챗봇을 제작해, 유족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거나 정서적 위안을 얻도록 돕고 있습니다.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대화가 진짜냐는 물음입니다. 우리가 대화하고 있는 대상은 실제 고인이 아니라, 데이터를 학습한 인공지능일 뿐입니다. 그 목소리와 말투는 익숙할지 몰라도, 그 안에는 더 이상 '그 사람'이 존재하지 않습니다. 기억을 디지털로 재현하는 행위는 어쩌면 애도의 방식이라기보단, 현실 부정에 가까운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.
위로인가, 집착인가
저도 가까운 사람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습니다. 마지막 인사를 못 했다는 아쉬움, 더 자주 연락하지 못한 미안함이 오래 남았습니다. 그래서 이런 기술이 주는 감정적 위안이 어떤 의미인지, 조금은 짐작할 수 있습니다. 하지만 만약 제가 그 사람과 계속해서 대화할 수 있다면, 과연 마음이 편해질까요? 아니면 이별을 미루는 데만 집착하게 될까요? AI 챗봇이 애도를 돕는 것이 아니라, 오히려 상실의 감정을 정지시키는 역할을 할 위험성도 함께 있다고 생각합니다.
인간의 감정을 대신할 수 있을까
AI는 점점 정교해지고 있습니다. 하지만 감정은 데이터로 완전히 구현되지 않습니다. 말투는 흉내 낼 수 있어도,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던 맥락과 삶의 깊이는 결코 동일하게 재현될 수 없습니다. 챗봇은 기억을 보조할 수는 있지만, 그 사람 자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. 우리는 누군가를 기억할 때, 그가 했던 말뿐 아니라, 함께 있었던 시간, 표정, 기분, 공기까지도 기억합니다. 그런 기억은 기술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. 그래서 저는 이 기술이 ‘사람을 잊지 않기 위한 도구’로 쓰이는 건 좋지만, ‘사람을 잊지 않기 위한 이유’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.
AI 추모 챗봇은 이제 막 시작된 기술입니다. 더 발전할 수도 있고, 더 상업화될 수도 있습니다. 하지만 기술의 방향을 결정하는 건 결국 사용하는 사람입니다. 우리는 이 기술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어 하는지, 그리고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스스로 물어야 합니다. 잊지 말아야 할 건, 애도는 기술이 아닌 인간이 경험하는 과정이라는 점입니다. 챗봇은 우리 곁에 잠시 머물 수는 있겠지만, 진정한 이별과 회복은 결국 우리 마음에서 이뤄져야 합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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